[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촉구 릴레이 기고]
전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사회적 경제 기본법은 말 그대로 사회적 경제 활성화에 가장 기본이 되는 법률이다. 사회적 경제 단체들이 줄기차게 입법을 요구해온 사회적 경제 3법(사회적 경제 기본법,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 사회적 경제 기업 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특별법) 중에서도 ‘모법’이자 ‘근거법’ 역할을 하는 핵심 법률이다. 19대와 20대 국회 때 각각 세 건이 발의됐으나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강병원, 김영배 양경숙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각각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은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회적 경제 단체들은 여당이 책임을 지고 이번에는 꼭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와 공동으로 사회적 경제 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는 각계의 주장을 담은 기고를 5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 5월 대구 지역 1천여개의 사회적 경제 기업, 시민단체, 학계가 모인 대구사회적경제가치연대가 출범했다. 사진 대구사회적경제가치연대 제공
지난 2월 18일, 대구에서 확진자가 나온 지 단 10일 만에 누적 확진자 수가 2천명을 넘어서면서 대구는 공포의 도시가 됐다. 감염병의 빠른 확산으로 도시 기능이 마비됐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취약계층의 삶은 더 고달팠다. 노숙인 및 취약계층 무료 급식과 결식 아동과 홀몸 노인 대상 사회서비스가 중단되고, 이주노동자 지원 부족, 학교 밖 청소년들의 단기 일자리 상실 및 지원체계 마비 등으로 취약계층은 생존 위기에 내몰렸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사회서비스 중단 사이의 딜레마 속에서 누군가는 이들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 어둠을 떨치고 나와 작은 빛이 되어준 이들이 사회적 경제인들이었다. 대구 지역 사회적 경제인들 역시 경영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취약계층의 삶을 살피고자 나눔과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수공예 제품 판매로 한부모 가정의 자립을 돕는 아가쏘잉협동조합은 노숙인을 위한 도시락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여기에 다른 마을기업들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서 대구마을기업연합회와 협업하게 됐다. 대구사회적기업협의회가 주도한 사회적경제가치연대는 기부와 나눔 활동을 주도했고, 시 단위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교육·문화예술·여행·숙박 업종 사회적 경제 기업을 위한 긴급 지원정책도 마련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나눔, 복지 사각지대 청소년을 위한 활동, 결식 아동을 위한 봉사, 지친 시민을 위로하는 공연도 진행됐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사회적 경제 기업들은 고용을 유지하면서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고용연대선언’을 발표했다. 사진 대구사회적경제가치연대 제공
대구 지역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코로나 극복을 위해 모금한 기부금 총액은 7천9백여만원. 물품 및 서비스 기부활동은 197회, 환산 가치는 2억2천8백여만원, 물품구매를 통해 기부한 활동은 71회, 금액은 6천8백여만원에 이른다. 소규모 기업들이고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작은 영웅들의 확인된 총 활동 횟수는 264회, 금액 합계는 3억7천여만원에 이른다. 이동이 제약된 상황에서 유통에 특화된 사회적기업 무한상사는 밤낮없이 구호물품 배송봉사를 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보여준 사회적 경제의 지역사회 활동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사회적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자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이다. 사회적 경제 주체들은 위기 속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의 가치를 실천했다. 함께 사는 세상을 보여준 이들은 사회적 경제가 왜 주요한 사회적 자산인지 확인시켜줬다. 영리성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모델로, 제3섹터로 분류되는 사회적 경제는 공공과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 문제에 새로운 해결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공공 서비스가 일시 중단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취약계층에 작은 등불을 밝혀준 사람은 사회적 경제인들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구호물품 등이 복지기관에 전달될 때, 공공복지 전달체계에서 벗어난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간 것도 사회적 경제인들이었다. 공익 추구라는 사회적 목적을 가지면서 민간의 유연한 대응력을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구 지역 사회적 경제 기업들은 취약계층의 삶을 살피고자 거리 곳곳에서 나눔 활동을 진행했다. 사진 대구사회적경제가치연대 제공
그러나 나눔과 봉사에 참여했던 사회적 경제인들은 사회적 경제의 기본 원리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이 여전히 취약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사회적 경제가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공공의 몫이다. 지난 20년간 영국의 사회적 경제 정책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전반기 10년은 기반을 다지고, 후반기 10년은 공공과 사회적 경제 간 연결을 통해 협업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우리나라의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이 개별 부처별로 제도화되고 육성됐지만, 이들을 아우르는 사회적경제기본법은 매번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사회적 경제가 우리 생활 곳곳에 조금씩 안착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경제를 포괄할 기본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못한 것은 입법기관이 그 소임을 방기하는 것과 같다. 사회적 경제를 여야 정쟁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대구의 경험을 다시 한번 보라. 이제는 정치가 시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응답할 시기다. 우리는 누구나 한켠에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전인 영남대학교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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