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2020년 10월14일 임시이사회에서 그룹 회장으로 선임됐다. 정 신임 회장의 첫 공식 행보는, ‘수소’였다. 정의선 회장은 취임 다음날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2차 수소경제위원회에 참석했다. 언론 취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 회장은 이날 오전 현대차가 만든 수소차 ‘넥쏘’를 타고 나타났다. ‘정의선 시대’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전략 사업이 수소란 걸 은근히 드러내려는 의도로 읽힌다. 정 회장은 2시간여 열린 회의에서 수소차 개발과 보급에 강한 의지를 밝혔다. 현대차그룹에서 이런 수소차 사업을 맡은 계열사는 어디일까? 자동차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가 아니었다. 의외로 물류 계열사 현대글로비스가 맡았다. 정 회장 취임 두 달여 뒤인 12월11일, 현대차그룹은 미국 로봇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8억8천만달러(약 9600억원)를 들여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글로비스 10%, 정 회장이 개인적으로 20% 지분을 각각 사들인다. 정 회장 취임 뒤 가장 큰 인수·합병(M&A)이었다. 그룹 전체로 보면, 2020년 3월 미국 앱티브와 함께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Motional)을 세우기 위해 20억달러(약 2조2천억원)를 투자한 데 이은 두 번째 큰 규모다. 정 회장 취임 뒤 투자 회사에 미묘한 차이가 보였다. 모셔널 설립 때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가 투자한 것과 달리, 이번엔 기아차가 빠지고 현대글로비스가 참여했다. 정 회장 취임 뒤 현대차그룹은 은근히 현대글로비스를 키워주고 있다. 시장에선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 있다고 본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21.4%)→현대차(33.9%)→기아차(17.3%)→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현대모비스로 그룹 주요 계열사를 통제하는 셈이다. 반면 정 회장은 정몽구 명예회장에게서 그룹 총수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2.62%), 기아차(1.74%), 현대모비스(0.32%) 지분은 미미하다. 다만 현대글로비스(23.29%), 현대엔지니어링(11.72%·비상장), 현대오토에버(9.57%)는 정 회장 지분이 많다. 시장에선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팔아 현대모비스 주식을 사들이는 식으로 지배구조를 확보할 것으로 본다. 이 경우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오를수록, 현대모비스 주가가 내려갈수록 정 회장의 재원 마련은 쉬워진다. 이 때문에 현대차 지배구조가 개편될 때까지 정 회장 지분이 있는 계열사는 ‘더운밥’으로 대우받고 그렇지 않은 계열사는 ‘찬밥’ 신세가 되리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건 현대차 직원의 푸념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주주 이익과도 결부됐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지분을 많이 가진 현대오토에버는 2019년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뒤 공모가 대비 100% 이상 성장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로 그 가치를 더욱 높이게 됐다. 마찬가지로 현대엔지니어링이 조만간 상장되거나 현대건설과 합병할 거란 얘기도 솔솔 나온다. 주식회사는 그룹 총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주주·직원·협력업체를 포함해 여러 이해 당사자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정의선 회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현대차그룹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일반 주주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지 지켜봐야 할 때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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