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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문재인 정부의 독점 친화적 경제 정책 - 조선비즈

입력 2020.12.21 06:00

지난 10월 말 판결이 난 비료 입찰 담합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은 현행 법규가 독과점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는 데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소송의 시작은 지난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남해화학, KG케미칼 등 13개 회사가 농협에 공급하는 비료 가격을 담합한 것을 적발한 데서 부터다. 당시 공정위는 이들 회사들이 1995~2010년 총 16년 동안 국내 농업용 비료 시장에서 담합을 해 최종 수요자인 농민들에게 총 1조600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을 밝혔다. 농업용 비료는 비료 보조금을 집행하는 농협이 핵심 유통망이다. 2009년 당시 비료 시장 규모 1조8400억원 가운데 농협은 85.3%(1조5700억원)를 차지했다. 농협 비중이 큰 만큼 농협 입찰 과정에서의 담합은 농민들에게 큰 손실을 끼쳤다.

서울중앙지법은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 농민 1만7300명에 대해서 비료 회사가 총 58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2년 소송이 시작된 지 8년 만이다. 공정위가 적발한 담합 사건 가운데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 대해 배상 판결이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도 보상 규모는 공정위가 추산한 손해액(즉 비료회사의 부당이득)에 턱없이 못 미치는 규모다. 피해를 입은 농민 수백만명 가운데 8년에 걸친 소송에 참가한 이들만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료회사 쪽에서는 김앤장, 태평양, 화우 등 담합 사건의 전문가들을 고용해 대응했다. 이 소송에 대해 한 공정위 관계자는 "별도 민사 소송을 제기해야하는 현행 법제도에선 기업들의 담합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보상을 받기란 쉽지가 않다"며 "담합 규제가 가진 맹점 가운데 하나로 보완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공정 경제’를 핵심 경제 정책 목표로 내세웠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성적표를 초라하다. 특히 독과점이나 담합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퇴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출범 당시 사실상의 인수위였던 국정기획위원회가 발간한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서 "기업들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소비자들이 당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행사할 수 있도록 소비자 피해 구제를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이 공약을 다시 거론하는 정부 관계자는 이제 없다. 비료 담합과 같은 사건에 대해서 피해자들은 몇 년에 걸친 소송을 각오하고 자력 구제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지난 9일 강행 처리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경우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가 빠졌다. 문재인 정부는 경성담합(硬性·가격담합) 사건에 대한 수사·고발권을 검찰에 주는 방안을 정부 출범 전부터 추진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공정위원장 재직 당시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해 "공정위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전속고발권 폐지가 빠지게 된 데에는 미운 털이 박혀 있는 검찰에 권한을 더 주지 않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인식 때문이라는 게 주된 해석이다.

지난달 발표된 한진칼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해 산업계 일각에서는 항공 노선 독과점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항공노선은 크게 일본·중국 등의 중단거리 여객 노선, 미국·유럽의 장거리 여객 노선, 그리고 항공 화물로 나눠볼 수 있다. 아시아나의 경우 2010년대 중반까지 중단거리 노선 수요 증가에 힘입어 성장했지만, 저비용항공사(LCC)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어려움을 겪는 요인이 됐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시 건실한 사업영역이었던 장거리 여객과 화물 운송의 점유율이 높아지는 게 문제인 이유다. 특히 화물의 경우 2019년 점유율이 대한항공은 41.8%, 아시아나는 25.2%(아시아나항공 사업보고서 기준)에 달한다. 두 회사가 합쳐지면 점유율 67.0%의 독과점 사업자가 탄생하게 된다.

독과점의 핵심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 공급이다. 독과점 회사는 공급을 줄여 가격을 높이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독점 이윤을 확보하기 어려운 노선의 경우 취항하지 않거나 운항 편수를 크게 줄일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화물 운송의 경우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이외에 대안을 찾기도 어렵다. 높아진 운임은 어찌어찌 지불한다지만, 과소(過少) 투자에 따른 수송능력 감소는 한국 수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미 해운업의 경우 선박 부족이 최대 문제가 된 상황이다. 미주와 유럽까지 가는 장거리 노선의 경우 HMM 밖에 대안이 없다시피 한 데, HMM 소속 선박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현 HMM)의 양강 구도가 지금과 같은 HMM 독주 형태로 구조조정이 이뤄진 데 대해 정책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독과점이 부작용이 빤한 상황에서, 독과점 친화적 행보를 걷는 정부의 입장이다. 당장 부실한 회사 여러 곳이 한 곳으로 통폐합되거나, 검찰의 힘이 빠지는 건 정부 당국자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그 청구서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앞서 소개한 비료 담합 사건의 경우 16년 동안 비료 회사들이 챙긴 부당이득은 2009년 한 해 농협을 통한 판매 금액을 웃돌았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연 평균 6.3% 정도 높은 가격으로 농민들이 바가지를 써왔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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